'2007/02'에 해당되는 글 6건
- 2007/02/23 Fedora Core 6로 갈아타는 중 (8)
- 2007/02/21 끝나가는 5박 6일 "내 맘대로" 설 휴가 (2)
- 2007/02/11 마그마 - 잊혀진 사랑? 잊혀진 사람! (5)
- 2007/02/10 Comunque bella (그래도 아름다워) (2)
- 2007/02/10 E penso a te (그리고 난 널 생각해) (3)
- 2007/02/06 적들(?)의 자중지란에 즐거워하며 (11)
새해를 맞이하여 미루고 미뤘던 노트북 OS 업그레이드를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_- Sony VAIO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일단 개김성을 보여줬다.
오후 내내 데이터들 백업하고 가뿐하게 CD#1를 밀어넣고 리붓...했지만 아나콘다(anaconda; 레드햇 계열 리눅스 설치 프로그램)는 시작도 되지 않고 하염없이 CD만 돌아갔다. 지난 번 Fedora Core 5 설치 때는 그래도 설치는 되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부팅해서 손 볼 꺼리라도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컴퓨터에서 CD#1을 체크해 봤더니 에러가 있긴 있어서... 새로 구우면 되겠구나 싶어 잠깐이나마 안심(?)했는데... 그 약간의 에러가 있는 CD들을 그동안 여러 명이 아무 이상 없이 잘 써왔다는게 문제...
새로 구워봐야 똑같은 상태일 것 같아서 포기하고
업데이트 하느라 골골거리는 컴퓨터에서도 웹브라우저 정도는 그럭저럭 이용할 수 있으므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문득 예전엔... 지금처럼 리눅스가 손에 익어 무슨 일을 하든 별 재미를 못 느끼게 되기 전엔... 새로 나온 배포판을 설치해 보기 전에 꼭 Release Notes를 읽어보던 기억이 났다. 그래 간만에 쭉 읽어내려가던 Fedora Core 6 Release Notes에서 발견한...
http://fedora.redhat.com/docs/release-notes/fc6/en_US/sn-Installer.html#id2932261
나도 나름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매번 똑같은 기초적인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해야 한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조금만 신경써서 구글링이라도 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그런 축에 속한다. 그랬던 내가 이 무슨 야만적인(?!) 삽질을 한 건가;;; 역시 게으름은 언젠가 하이킥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ㅠㅠ 결론은... 누군가 애써 작성해 올린 Release Notes 등 문서들은 몇 분만 시간 투자해서 읽어주자!
오후 내내 데이터들 백업하고 가뿐하게 CD#1를 밀어넣고 리붓...했지만 아나콘다(anaconda; 레드햇 계열 리눅스 설치 프로그램)는 시작도 되지 않고 하염없이 CD만 돌아갔다. 지난 번 Fedora Core 5 설치 때는 그래도 설치는 되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부팅해서 손 볼 꺼리라도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컴퓨터에서 CD#1을 체크해 봤더니 에러가 있긴 있어서... 새로 구우면 되겠구나 싶어 잠깐이나마 안심(?)했는데... 그 약간의 에러가 있는 CD들을 그동안 여러 명이 아무 이상 없이 잘 써왔다는게 문제...
새로 구워봐야 똑같은 상태일 것 같아서 포기하고
- 예전에 선호했던 네트웍 설치(업그레이드)를 하거나
- 하드에 이미지를 받아서 그걸로 설치할 것을 검토하다가
- 혹 DVD로 설치를 하면 어떻게 안되겠냐는 제안에... 그렇게 했다.
업데이트 하느라 골골거리는 컴퓨터에서도 웹브라우저 정도는 그럭저럭 이용할 수 있으므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문득 예전엔... 지금처럼 리눅스가 손에 익어 무슨 일을 하든 별 재미를 못 느끼게 되기 전엔... 새로 나온 배포판을 설치해 보기 전에 꼭 Release Notes를 읽어보던 기억이 났다. 그래 간만에 쭉 읽어내려가던 Fedora Core 6 Release Notes에서 발견한...
http://fedora.redhat.com/docs/release-notes/fc6/en_US/sn-Installer.html#id2932261
Sony VAIO Notebooks
Some Sony VAIO notebook systems may experience problems installing Fedora Core from CD-ROM. If this happens, restart the installation process and add the following option to the boot command line:
pci=off ide1=0x180,0x386Installation should proceed normally, and any devices not detected are configured the first time Fedora Core is booted
... 이것이 나의 잃어버린 몇 시간을 상기시키며 그렇잖아도 부산에서 묻혀온 감기 기운으로 지끈거리는 내 머리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 줬다 ㅠㅠ
나도 나름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매번 똑같은 기초적인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해야 한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이 조금만 신경써서 구글링이라도 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그런 축에 속한다. 그랬던 내가 이 무슨 야만적인(?!) 삽질을 한 건가;;; 역시 게으름은 언젠가 하이킥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ㅠㅠ 결론은... 누군가 애써 작성해 올린 Release Notes 등 문서들은 몇 분만 시간 투자해서 읽어주자!
지난 주 금요일에 시작된 설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고향인 거제도에서 이틀을 잤고, 그 이후 지금껏 부산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
나의 이번 설 휴가는, 우리 천천히 徐씨 집안의 바람직한 전통인 -_- 무사태평 안일주의가 간만에 발동하야 시작부터 좀 삐끗했다 - 내가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주 목요일 오후에야 느긋하게 역에 나가 서울->부산 열차표를 알아보려다 (당연히) 실패하고, 그 다음날인 금요일엔 오전 느즈막하게 터미널에 나가 서울->통영 버스표를 알아보는데 역시나 (당연히) 실패...했다. 그래 대충 어떻게 되겠지라는 비장한 거시기로 일단 서울->진주 버스를 탔고, 진주 거리를 헤매이다 석양을 등지고 힘차게 굴러오는 진주->통영 버스를 발견(?)했고, 통영에선 부산에서 출발한 엄마마마를 접선해 함께 거제로 향했다. 다행스러운 건 버스를 탄 내내 별다른 교통체증이 없었다는 사실... 짧은 설 연휴라고 고향 못 간(또는 안 간)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
고향에 있는 동안은... 말로만 듣던 '30대 미혼 & 비사회인'의 명절 수난을 드디어... 실감했다 -_-;; 언젠가 올 것이 온 거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니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나보다 (많이) 어린 동생의 첫 아이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고 이뻤다. 문제는 자기 아빠보다 키 큰 사람이(예를들어 나) 안아주면 잠시 후에 운다는 거.. ㅡㅡ;; 음, 생각해 보니, 더 큰 문제는 내가 안아준 애기들 대부분이 그랬다는 거... 그렇다면 내가 문제일 수도,,, 혹 내가 싸일런 @@ !! (이래서 안 되는 거다 ㅠㅠ 지구인 여자들은 이런 거 싫어하는데!)
수난을 -_-;; 뒤로 하고 아버지, 엄마마마와 함께 부산에 도착, 다음날 누나네 식구들과(매형, 누나, 이제 잘 뛰어노는 첫 조카, 그리고 누나 뱃속에서 자라는 둘째) 합류해 용궁사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을 줄은 알았는데, 역시나 정말 많았다. 하루 전인 정월 초하루나 곧 다가오는 대보름 날엔 이보다 더 많을텐데, 거기서 옷깃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인연으로 얽혀진 거라면 정말이지 만원 지하철 이상 가는 인연의 바다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좁은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옷깃을 스쳐야 하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까지 실제로 스쳐가게 되는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월 모일에 용궁사에서 옷깃을 스쳤다는 사실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같은 시각 지하철 몇 호선 몇 번 차량에서 서로 어깨를 밀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_-_
어제는 오후 늦게 부산역을 들러 일찌감치(?) 오늘 저녁 시간으로 서울행 열차표를 사고, 그 길로 해운대의 누나네 집까지 찾아가 내 수준에 맞는 ^^;; 네 살 짜리 첫 조카와 놀고, 매형이 퇴근길에 사오신 회까지 늘어지게 먹고서 집에 돌아왔다. 우리 집은 학장동인데, 부산 사람이면 알겠지만 해운대와 학장은 꽤 멀다. 지하철 안에서만 한 시간, 그리고 버스로 10분 거리... 모처럼 부산 거리를 쏘다니고 서울에서도 좀처럼 타지 않던 늦은 퇴근 시간(아홉 시 쯤) 지하철과 버스를 실컷 탔더니 - 집에 와서 바로 손 씻고 양치하고 했음에도 - 오늘 아침부터 목이 칼칼하고 열이 나는 듯 마는 듯... 좋은 징후다. 몇 시간 후면 얘들을 데리고 서울역에 내릴텐데, 과연 얘들 부산 감기 바이러스들은 서울 감기 바이러스들의 깝쭉대는 텃세를 물리치고 세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이번 설 휴가는, 우리 천천히 徐씨 집안의 바람직한 전통인 -_- 무사태평 안일주의가 간만에 발동하야 시작부터 좀 삐끗했다 - 내가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주 목요일 오후에야 느긋하게 역에 나가 서울->부산 열차표를 알아보려다 (당연히) 실패하고, 그 다음날인 금요일엔 오전 느즈막하게 터미널에 나가 서울->통영 버스표를 알아보는데 역시나 (당연히) 실패...했다. 그래 대충 어떻게 되겠지라는 비장한 거시기로 일단 서울->진주 버스를 탔고, 진주 거리를 헤매이다 석양을 등지고 힘차게 굴러오는 진주->통영 버스를 발견(?)했고, 통영에선 부산에서 출발한 엄마마마를 접선해 함께 거제로 향했다. 다행스러운 건 버스를 탄 내내 별다른 교통체증이 없었다는 사실... 짧은 설 연휴라고 고향 못 간(또는 안 간)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
고향에 있는 동안은... 말로만 듣던 '30대 미혼 & 비사회인'의 명절 수난을 드디어... 실감했다 -_-;; 언젠가 올 것이 온 거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니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나보다 (많이) 어린 동생의 첫 아이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고 이뻤다. 문제는 자기 아빠보다 키 큰 사람이(예를들어 나) 안아주면 잠시 후에 운다는 거.. ㅡㅡ;; 음, 생각해 보니, 더 큰 문제는 내가 안아준 애기들 대부분이 그랬다는 거... 그렇다면 내가 문제일 수도,,, 혹 내가 싸일런 @@ !! (이래서 안 되는 거다 ㅠㅠ 지구인 여자들은 이런 거 싫어하는데!)
수난을 -_-;; 뒤로 하고 아버지, 엄마마마와 함께 부산에 도착, 다음날 누나네 식구들과(매형, 누나, 이제 잘 뛰어노는 첫 조카, 그리고 누나 뱃속에서 자라는 둘째) 합류해 용궁사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을 줄은 알았는데, 역시나 정말 많았다. 하루 전인 정월 초하루나 곧 다가오는 대보름 날엔 이보다 더 많을텐데, 거기서 옷깃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인연으로 얽혀진 거라면 정말이지 만원 지하철 이상 가는 인연의 바다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좁은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옷깃을 스쳐야 하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까지 실제로 스쳐가게 되는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월 모일에 용궁사에서 옷깃을 스쳤다는 사실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같은 시각 지하철 몇 호선 몇 번 차량에서 서로 어깨를 밀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_-_
어제는 오후 늦게 부산역을 들러 일찌감치(?) 오늘 저녁 시간으로 서울행 열차표를 사고, 그 길로 해운대의 누나네 집까지 찾아가 내 수준에 맞는 ^^;; 네 살 짜리 첫 조카와 놀고, 매형이 퇴근길에 사오신 회까지 늘어지게 먹고서 집에 돌아왔다. 우리 집은 학장동인데, 부산 사람이면 알겠지만 해운대와 학장은 꽤 멀다. 지하철 안에서만 한 시간, 그리고 버스로 10분 거리... 모처럼 부산 거리를 쏘다니고 서울에서도 좀처럼 타지 않던 늦은 퇴근 시간(아홉 시 쯤) 지하철과 버스를 실컷 탔더니 - 집에 와서 바로 손 씻고 양치하고 했음에도 - 오늘 아침부터 목이 칼칼하고 열이 나는 듯 마는 듯... 좋은 징후다. 몇 시간 후면 얘들을 데리고 서울역에 내릴텐데, 과연 얘들 부산 감기 바이러스들은 서울 감기 바이러스들의 깝쭉대는 텃세를 물리치고 세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달에 구하게 된 (70년대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그룹이 아니라 80년대의 한국 그룹) 마그마의 1981년 동명 타이틀 데뷔 음반이다. 물론, 내가 구했다는 음반은 2004년에 새로 찍혀 나온 CD 다. 마그마는 씨뷁스 박통 리갈 대장군 각하와 미친 또라이 전 29만원 장군 사이의 짧은 봄날('서울의 봄'이라고 알려진)에 대학 가요제를 통해 등장, 이듬해에 데뷔 음반이자 마지막 음반인 본작을 발표하고서 어느 샌가 흩어져 버린(이런 경우를 원샷 밴드라고 부름) 3인조 캠퍼스 밴드다([참고링크]).
분명 오래 전부터 얘기는 들었던 음반인데, 제목만 봐서는 내가 들어본 곡이 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신나게 듣다보니 왠지... 아니 틀림없이 귀에 익은 곡이 하나 다가왔다. 잊혀진 사랑. 내가 잊혀진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예전에 어떤 개인 홈페이지에서 열악한 음질의 rm (Real Media) 파일로 들을 수 있었던. 이게 어찌된 일인지는 CD의 해설지에도, 그리고 위의 링크에도 소개되어 있다 - 원래 4차원의 세계였던 곡이 1981년 당시 심의에 걸려 가사도 수정되고 제목 또한 잊혀진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그 바뀐 제목마저 당시 음반 제작사의 실수로 잊혀진 사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랬던 걸 그 누군가의 홈페이지에선 어떻게 제대로 된 제목인 잊혀진 사람을 써 줬는데, 2004년 새로 CD로 나온 음반에선 원래 제작사의 실수를 존중하는 의미에서인지 잘못된 제목인 잊혀진 사랑이라고 계속 썼다. 물론 가사 내용은 잊혀진 사랑보다 잊혀진 사람 쪽에 더 가깝다 -_-
이 음반은 아름다운 곳, 해야, 잊혀진 사랑 사람, 탈출 등 - 그 암울한 시대 꽉막힌 독재자들이 완전히 억누를 수 없었던 한국인의 Rock 본능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훌륭한 싸이키델릭-하드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그마라는 그룹명의 이미지가 잘 반영된 커버 아트 또한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서 오히려 공들인 흔적이 엿보이고... 다만, 실수로 곡 제목이 바뀐 것과 함께, 다분히 열악한 레코딩, 커버에 새겨진 멤버들의 대학과 학과명(-_-?), 그리고 앨범의 컨셉트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 어쩌면 시대적 한계라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몇 가지 흠도 눈에 띈다. 어쨌든, 그래도 누군가 꼭 기억해줘야만 할, 특히 Rock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을, 우리 대중음악의 (그리 대중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중요한 성취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눈물같은 골짜기에 서러운 달밤은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어느날 우연히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양지에 조그만 나무 하나 자라 났었네
그 곁에 언제나 많은 꽃과 나비 있어서
어리고 연약한 그의 친구가 되었었네
하늘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었네
햇살이 비추는 따스한 봄날이었네
세월이 흘러서 나무는 어른이 되었네
사람이 찾아와 그늘에서 쉬곤 했었네
아무도 그 자릴 그냥 지나가지 않았네
나무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었네
유난히 파아란 그 빛을 발하고 있네
무더운 날에도 시원한 여름이었네
그후로 세월이 한참 또 흘러가 버렸네
나무는 늙어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네
그늘을 찾는 이 하나 둘씩 줄어가더니
나중엔 하나도 곁에 오려 하지 않았네
나무는 울었네 너무나 슬퍼했네
모든게 떠나는 외로운 가을이었네
나무는 마지막 세상을 등지었네
모든게 사라져 잊혀가고 있었네
하늘은 하얀 눈을 내려 주었네
세상이 잠드는 차가운 겨울이었네
분명 오래 전부터 얘기는 들었던 음반인데, 제목만 봐서는 내가 들어본 곡이 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신나게 듣다보니 왠지... 아니 틀림없이 귀에 익은 곡이 하나 다가왔다. 잊혀진 사랑. 내가 잊혀진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예전에 어떤 개인 홈페이지에서 열악한 음질의 rm (Real Media) 파일로 들을 수 있었던. 이게 어찌된 일인지는 CD의 해설지에도, 그리고 위의 링크에도 소개되어 있다 - 원래 4차원의 세계였던 곡이 1981년 당시 심의에 걸려 가사도 수정되고 제목 또한 잊혀진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그 바뀐 제목마저 당시 음반 제작사의 실수로 잊혀진 사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랬던 걸 그 누군가의 홈페이지에선 어떻게 제대로 된 제목인 잊혀진 사람을 써 줬는데, 2004년 새로 CD로 나온 음반에선 원래 제작사의 실수를 존중하는 의미에서인지 잘못된 제목인 잊혀진 사랑이라고 계속 썼다. 물론 가사 내용은 잊혀진 사랑보다 잊혀진 사람 쪽에 더 가깝다 -_-
이 음반은 아름다운 곳, 해야, 잊혀진 사랑 사람, 탈출 등 - 그 암울한 시대 꽉막힌 독재자들이 완전히 억누를 수 없었던 한국인의 Rock 본능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훌륭한 싸이키델릭-하드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그마라는 그룹명의 이미지가 잘 반영된 커버 아트 또한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서 오히려 공들인 흔적이 엿보이고... 다만, 실수로 곡 제목이 바뀐 것과 함께, 다분히 열악한 레코딩, 커버에 새겨진 멤버들의 대학과 학과명(-_-?), 그리고 앨범의 컨셉트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 어쩌면 시대적 한계라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몇 가지 흠도 눈에 띈다. 어쨌든, 그래도 누군가 꼭 기억해줘야만 할, 특히 Rock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을, 우리 대중음악의 (그리 대중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중요한 성취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해야
(조하문 개사 / 조하문;김광현 작곡)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마알간 해야 네가 웃음지면 홀로라도
나는 좋아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애띤 얼굴 솟아라
눈물같은 골짜기에 서러운 달밤은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잊혀진 사람
(조하문 작사 / 조하문 작곡)
어느날 우연히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양지에 조그만 나무 하나 자라 났었네
그 곁에 언제나 많은 꽃과 나비 있어서
어리고 연약한 그의 친구가 되었었네
하늘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었네
햇살이 비추는 따스한 봄날이었네
세월이 흘러서 나무는 어른이 되었네
사람이 찾아와 그늘에서 쉬곤 했었네
아무도 그 자릴 그냥 지나가지 않았네
나무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었네
유난히 파아란 그 빛을 발하고 있네
무더운 날에도 시원한 여름이었네
그후로 세월이 한참 또 흘러가 버렸네
나무는 늙어서 점점 약해지고 있었네
그늘을 찾는 이 하나 둘씩 줄어가더니
나중엔 하나도 곁에 오려 하지 않았네
나무는 울었네 너무나 슬퍼했네
모든게 떠나는 외로운 가을이었네
나무는 마지막 세상을 등지었네
모든게 사라져 잊혀가고 있었네
하늘은 하얀 눈을 내려 주었네
세상이 잠드는 차가운 겨울이었네
탈출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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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의 원래 작사자는 물론 박두진 선생(1916-1998)이다. 어디선가 주워 듣기로, 박두진 선생은 당신의 시 '해'를 무단으로(!) 개사해 대학 가요제에서 상을 먹고도 연락 한 번 않은 마그마 멤버들을 괘씸하게 여겨 직접 불러다 모아 야단쳤는데, 그 와중에 멤버 중 하나가 무려 이런 소리를 했다고 전한다... (마우스 스크롤) "실은 저희가... 국어책에 나오는 선생님이 여태 살아 계신지 몰랐거든요" 참고로 당시 박두진 선생은 그룹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조하문(지질학과)이 다닌 연세대의 교수로 있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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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의 원래 작사자는 물론 박두진 선생(1916-1998)이다. 어디선가 주워 듣기로, 박두진 선생은 당신의 시 '해'를 무단으로(!) 개사해 대학 가요제에서 상을 먹고도 연락 한 번 않은 마그마 멤버들을 괘씸하게 여겨 직접 불러다 모아 야단쳤는데, 그 와중에 멤버 중 하나가 무려 이런 소리를 했다고 전한다... (마우스 스크롤) "실은 저희가... 국어책에 나오는 선생님이 여태 살아 계신지 몰랐거든요" 참고로 당시 박두진 선생은 그룹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조하문(지질학과)이 다닌 연세대의 교수로 있었다... -_-;;
Lucio Battisti의 1972년도 음반 Umanamente Uomo: Il Sogno (인간적인 사람: 꿈)에서 한 곡 더 ^^
이 음반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은 누가 뭐라고 해도 I giardini di marzo (3월의 정원) 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직 2월이므로 그 곡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 내가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곡 Comunque bella 를... (마침 가사도 예전에 번역해 둔 게 있어서,,)
Tu vestita di fiori
o di fari in città
con la nebbia o i colori
cogliere le rose a piedi nudi e poi
con la sciarpa stretta al collo bianca come mai
ma...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당신은 꽃처럼 차려 입었어
또는 도시의 불빛처럼
안개빛 또는 다채로운 빛깔로
벗은 발은 장미꽃 더미에 올라섰고 그리고는
너무나 하얀 목엔 스카프를 두른 채
하지만... 당신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아름다워
Quando l'arcobaleno
era in fondo ai tuoi occhi
quando sotto al tuo seno
l'ira avvelenava il cuore tuo perché
tu vedevi un'altra donna avvicinarsi a me
prima ancora che io capissi e riscegliessi te
tu...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언젠가 당신의 눈가에
무지개가 맺힐 때
언젠가 내 곁에 있는 다른 여자를 보고
당신의 가슴 속에서
당신의 마음이 분노에 중독될 때
나는 또 한 번 당신을 이해하고 다시금 당신을 선택할거야
당신... 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아름다워
Anche quando un mattino tornasti vestita di pioggia
con lo sguardo stravolto da una notte d'amore
siediti qui
non ti chiedo perdono perché tu sei un uomo
또한 당신이 언젠가 아침이 되어서야 비에 흠뻑 젖은 채 돌아오고
그걸 본 나는 당신의 사랑의 하룻밤에 마음이 상해
'들어와서 여기 앉아 봐' 말하겠지만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께 왜냐하면 당신도 한 인간이니까
Coi capelli bagnati - so che capirai
Con quei segni sul viso - mi spiace da morire sai
coi tuoi occhi arrossati
mentre tu mentivi e mi dicevi che
ancora più di prima tu amavi me
tu...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젖은 머리카락으로 - '당신이 이해해 줄 것을 알아'
얼굴에 내비치는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 '죽으라면 어쩔 수 없지, 알잖아'
충혈된 당신의 두 눈으로
나에게 거짓말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다시금 또 한 번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거야
당신... 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당신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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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o Battisti를 소개하면서 노랫말을 맡은 Mogol을 빠뜨릴 뻔 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앞서 소개한 곡들도 그렇고, 아무튼 70년대 가장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Lucio의 곡들에 대한 노랫말은 거의 대부분 Mogol이 담당했다. 이들 Lucio+Mogol 콤비는 1970년대 초중반 동안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에 평범한 깐쪼네(canzone;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중가요)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든 - 정말 희한했던 한 시대를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음반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은 누가 뭐라고 해도 I giardini di marzo (3월의 정원) 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직 2월이므로 그 곡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 내가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곡 Comunque bella 를... (마침 가사도 예전에 번역해 둔 게 있어서,,)
Comunque bella
(L. Battisti / Mogol)
Tu vestita di fiori
o di fari in città
con la nebbia o i colori
cogliere le rose a piedi nudi e poi
con la sciarpa stretta al collo bianca come mai
ma...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당신은 꽃처럼 차려 입었어
또는 도시의 불빛처럼
안개빛 또는 다채로운 빛깔로
벗은 발은 장미꽃 더미에 올라섰고 그리고는
너무나 하얀 목엔 스카프를 두른 채
하지만... 당신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아름다워
Quando l'arcobaleno
era in fondo ai tuoi occhi
quando sotto al tuo seno
l'ira avvelenava il cuore tuo perché
tu vedevi un'altra donna avvicinarsi a me
prima ancora che io capissi e riscegliessi te
tu...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언젠가 당신의 눈가에
무지개가 맺힐 때
언젠가 내 곁에 있는 다른 여자를 보고
당신의 가슴 속에서
당신의 마음이 분노에 중독될 때
나는 또 한 번 당신을 이해하고 다시금 당신을 선택할거야
당신... 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아름다워
Anche quando un mattino tornasti vestita di pioggia
con lo sguardo stravolto da una notte d'amore
siediti qui
non ti chiedo perdono perché tu sei un uomo
또한 당신이 언젠가 아침이 되어서야 비에 흠뻑 젖은 채 돌아오고
그걸 본 나는 당신의 사랑의 하룻밤에 마음이 상해
'들어와서 여기 앉아 봐' 말하겠지만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께 왜냐하면 당신도 한 인간이니까
Coi capelli bagnati - so che capirai
Con quei segni sul viso - mi spiace da morire sai
coi tuoi occhi arrossati
mentre tu mentivi e mi dicevi che
ancora più di prima tu amavi me
tu... eri bella bella
comunque bella
젖은 머리카락으로 - '당신이 이해해 줄 것을 알아'
얼굴에 내비치는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 '죽으라면 어쩔 수 없지, 알잖아'
충혈된 당신의 두 눈으로
나에게 거짓말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다시금 또 한 번 당신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거야
당신... 은 아름다워 아름다워
그래도 당신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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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o Battisti를 소개하면서 노랫말을 맡은 Mogol을 빠뜨릴 뻔 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앞서 소개한 곡들도 그렇고, 아무튼 70년대 가장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는 동안 Lucio의 곡들에 대한 노랫말은 거의 대부분 Mogol이 담당했다. 이들 Lucio+Mogol 콤비는 1970년대 초중반 동안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에 평범한 깐쪼네(canzone; 일반적인 의미에서 대중가요)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든 - 정말 희한했던 한 시대를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대중음악 - 어떤 노래의 운명은 여러가지다. 그저 유행을 따르는 노래는 그 시대 잠깐 사랑받겠지만 세월과 함께 잊혀져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될 것이고, 변함없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 즉 자유, 평등,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노래한 곡들은 그 시대의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거나 심지어 사악한 권력으로부터 탄압받기도 하겠지만 대신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노래 중 몇몇은 그 시대나 다음 시대나 변함없이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 사랑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 행운이 가능하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줘야 하는데, 60년대 들어 세계 여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막 시작되려던 우리의 대중음악계에서는 그런 조건들 몇 가지가 제대로 갖춰질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빨간 색이 금기시되어 왔던 것이다. 요즘 들어서야 '야 C8 있는 것들만을 위한 이 드런 세상~' 내지 '오 yeah 그대와 함께 한 그날 밤~' 정도의 빨간 색 노래들이 TV에서도 그럭저럭 통하고 있지만, 아직도 소위 문화 선진국(?)이라는 동네들에 비해선 한참 멀었고, 예전엔 물론 이만큼도 못했다. 친애하는 씨뷁스 박통 리갈 장군과 그 뒤를 이은 또라이 전 29만 장군이 한때 세계적으로 잘 나갈 뻔 했던 우리 대중음악을 어떻게 쳐말아드셨는지는 예전에 신중현 선생과 아름다운 강산 스토리에서도 몇 줄 소개했으니 이쯤에서 그만 두고...
여기서는 뜬금없는...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의 큰 별 Lucio Battisti의 곡이나 하나 소개해야겠다. Lucio는 얼마 전에 '목 매어 죽은 사형수들의 노래'와 '묘지의 겨울' 두 곡으로 소개한 바 있는 Fabrizio De Andre'와 동시대인이면서(60년대 말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각각 1998년 1999년 사이좋게(?) 세상을 떠남), 진솔하고 인간미 넘치는 노래들로 수 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 굳이 분류를 하자면 깐따우또레(cantante + autore; 영어로는 singer + (song) writer)다.
내가 가진 Lucio의 음반들은 물론 어느 하나 집어낼 것 없이 다 사랑스럽지만,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1972년도 작품 "Umanamente Uomo: Il Sogno (인간적인 사람: 꿈)"에 가장 애착이 간다. (1) 음악세계를 통해 처음 Lucio Battisti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음반이기도 하지만, (2)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세계 어디서 뭔 짓을 하든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다 좋아한다는 Lucio의 대표곡이 여러 곡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그런데 다른 음반도 마찬가지.. -_-;;), (3) 그냥 들어도 결코 위압적이지 않고 약간은 어눌한 인간적인 목소리가 좋은데다 가사를 알고 나면 또 한 번 너무나 인간적으로 와닿는 메시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Io lavoro e penso a te
torno a casa e penso a te
le telefono e intanto penso a te
Come stai? E penso a te
Dove andiamo? E penso a te
Le sorrido abbasso gli occhi e penso a te
나는 일하면서 당신을 생각해
집에 와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이 통화하는 동안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어떻게 지내?' (들으면서) 당신을 생각하고
'우리 어디로 갈까?' (들으면서) 또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에게 눈웃음 지으며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Non so con chi adesso sei
non so che cosa fai
ma so di certo a cosa stai pensando
è troppo grande la città
per due che come noi
non sperano però si stan cercando cercando
난 당신이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아
'이 도시는 너무나 크지
우리같은 한 쌍에게는
서로를 믿어주지 않고 대신 찾고 또 찾기만 하는'
Scusa è tardi e penso a te
ti accompagno e penso a te
non son stato divertente e penso a te
sono al buio e penso a te
chiudo gli occhi e penso a te
io non dormo e penso a te
뒤늦은 사과를 들으며 나는 당신을 생각해
당신을 데리고 오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좋지 않은 기분이지만 또 당신을 생각하고
어둠 속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두 눈을 감은 채 당신을 생각하고
잠들지 않고서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
그리고 다음은 지난 90년대 후반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는 TV 쇼인 Non e' RAI 의 한 장면이다. RAI는 이탈리아의 국영 방송이니까 저걸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KBS가 최고야' 정도 된다 -_- 30년 전의 노래를 태연하게 부르는 어여쁜 Mary Patti 라는 출연자도 그렇지만, 방청객들의 반응 또한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사실은 어찌하여 저리들 하나같이 다 이쁠 수가 있는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
그런 행운이 가능하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줘야 하는데, 60년대 들어 세계 여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막 시작되려던 우리의 대중음악계에서는 그런 조건들 몇 가지가 제대로 갖춰질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빨간 색이 금기시되어 왔던 것이다. 요즘 들어서야 '야 C8 있는 것들만을 위한 이 드런 세상~' 내지 '오 yeah 그대와 함께 한 그날 밤~' 정도의 빨간 색 노래들이 TV에서도 그럭저럭 통하고 있지만, 아직도 소위 문화 선진국(?)이라는 동네들에 비해선 한참 멀었고, 예전엔 물론 이만큼도 못했다. 친애하는 씨뷁스 박통 리갈 장군과 그 뒤를 이은 또라이 전 29만 장군이 한때 세계적으로 잘 나갈 뻔 했던 우리 대중음악을 어떻게 쳐말아드셨는지는 예전에 신중현 선생과 아름다운 강산 스토리에서도 몇 줄 소개했으니 이쯤에서 그만 두고...
여기서는 뜬금없는...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의 큰 별 Lucio Battisti의 곡이나 하나 소개해야겠다. Lucio는 얼마 전에 '목 매어 죽은 사형수들의 노래'와 '묘지의 겨울' 두 곡으로 소개한 바 있는 Fabrizio De Andre'와 동시대인이면서(60년대 말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각각 1998년 1999년 사이좋게(?) 세상을 떠남), 진솔하고 인간미 넘치는 노래들로 수 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 굳이 분류를 하자면 깐따우또레(cantante + autore; 영어로는 singer + (song) writer)다.
내가 가진 Lucio의 음반들은 물론 어느 하나 집어낼 것 없이 다 사랑스럽지만,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1972년도 작품 "Umanamente Uomo: Il Sogno (인간적인 사람: 꿈)"에 가장 애착이 간다. (1) 음악세계를 통해 처음 Lucio Battisti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음반이기도 하지만, (2)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세계 어디서 뭔 짓을 하든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다 좋아한다는 Lucio의 대표곡이 여러 곡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그런데 다른 음반도 마찬가지.. -_-;;), (3) 그냥 들어도 결코 위압적이지 않고 약간은 어눌한 인간적인 목소리가 좋은데다 가사를 알고 나면 또 한 번 너무나 인간적으로 와닿는 메시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 penso a te &
Umanamente uomo: il sogno
Umanamente uomo: il sogno
Io lavoro e penso a te
torno a casa e penso a te
le telefono e intanto penso a te
Come stai? E penso a te
Dove andiamo? E penso a te
Le sorrido abbasso gli occhi e penso a te
나는 일하면서 당신을 생각해
집에 와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이 통화하는 동안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어떻게 지내?' (들으면서) 당신을 생각하고
'우리 어디로 갈까?' (들으면서) 또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에게 눈웃음 지으며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Non so con chi adesso sei
non so che cosa fai
ma so di certo a cosa stai pensando
è troppo grande la città
per due che come noi
non sperano però si stan cercando cercando
난 당신이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아
'이 도시는 너무나 크지
우리같은 한 쌍에게는
서로를 믿어주지 않고 대신 찾고 또 찾기만 하는'
Scusa è tardi e penso a te
ti accompagno e penso a te
non son stato divertente e penso a te
sono al buio e penso a te
chiudo gli occhi e penso a te
io non dormo e penso a te
뒤늦은 사과를 들으며 나는 당신을 생각해
당신을 데리고 오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좋지 않은 기분이지만 또 당신을 생각하고
어둠 속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두 눈을 감은 채 당신을 생각하고
잠들지 않고서 또 나는 당신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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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지난 90년대 후반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는 TV 쇼인 Non e' RAI 의 한 장면이다. RAI는 이탈리아의 국영 방송이니까 저걸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KBS가 최고야' 정도 된다 -_- 30년 전의 노래를 태연하게 부르는 어여쁜 Mary Patti 라는 출연자도 그렇지만, 방청객들의 반응 또한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물론, 사실은 어찌하여 저리들 하나같이 다 이쁠 수가 있는지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
최근, 멀리 있는 거대한 적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해 온 신무기가 저들의 기존 무기 체계와 제대로 호환이 되질 않아 혼선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오고 있다. 며칠 전엔 나에게까지 다음과 같은 훈훈한 메일이 날아올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 쪽 사람들 중 일부는 심지어 적들의 자중지랄 자중지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벌어질 더 재미난 스토리들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D
몇 년 동안 리눅스로만 버티던 나로 하여금 기어이 윈도우즈라는 적성 시스템 앞에 앉게끔 만든 것은 다름아닌 남조선 정부와 기업, 대학, 그리고 학회 등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멀리 있는 거대한 적이라면 저들 - 남조선 정부와 기업들은 가까이 있는 적들인 셈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윈도우즈를 써야할 일이 있던 시절엔 음료수나 하나 들고 다른 연구실에 찾아가서 필요한 일만 후딱 해치우곤 했지만, 애초부터 협상할 의사조차 없었던 무자비한 적들의 연합 전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숨막히게 옥죄어 왔다. 예를들어 작년 겨울 병실에서 요양 중인 -_- 나를 위해 누님이 대신 질러준 삼성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는데, 내가 몇 년 동안 공들인 리눅스 데스크탑에서는 아무리 해도 그 사진들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직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만 설치되는 삼성의 전용 USB 드라이버로만 가능한 일이었고, USB 기술이란 Universal Serial Bus - 즉 그동안 중구난방었던 컴퓨터 주변기기들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하자는 것이었다는 나의 상식은 gg되고 말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갑갑한 기억들만 해도 여럿 되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여기선 이쯤만 해야겠다.
한 달에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두 번 씩이나 그 적성 시스템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도 내 나름대론 꽤 오래... 앞서 소개한 방식으로 버텨 봤다. 하지만 지금은 결국 (데스크탑은 여전히 리눅스 only지만) 노트북을 리눅스+윈도우즈 듀얼 부팅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살아 남기 위해서 ㅠㅠ 하지만 하루에 너 댓 번 씩 적성 시스템인 윈도우즈를 이용하게 될 지라도(요즘 종종 이런 날이 있다...) 나의 종족은 영광스런 프로토스 리눅서 - 이 신념은 조금도 변치 않은 채 그대로다.
...
앞서 언급한 적들의 자중지랄 자중지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엔 나 또한 어느정도 동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상상해보는 최선의 시나리오들이라면,
안녕하세요!
항상 LG카드를 이용해 주시는 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2007년 1월 30일에 Windows XP후속으로 신규로 출시되는 Microsoft社의 Windows Vista 이용과 관련하여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Microsoft社의 새로운 운영체제 Windows Vista가 일부 보안프로그램과 충돌하여, 일부 회원님께서는 당사 홈페이지 이용 및 타 금융사 홈페이지 이용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부는 1월 23일 행정자치부, 금융감독원과 함께 Windows Vista의 작동 환경을 점검한 결과, 일부 서비스에서 프로그램 수정이 완료되지 않아 1~2개월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회원님께서는 Windows Vista 이용을 1~2개월 정도 미루는 것이 원할한 인터넷 사용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당사는 2월 중순까지 홈페이지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완료 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LG카드는 최상의 서비스와 다양한 혜택으로 회원님께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을 약속 드리며, 회원님의 가정에 안온함과 행복함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몇 년 동안 리눅스로만 버티던 나로 하여금 기어이 윈도우즈라는 적성 시스템 앞에 앉게끔 만든 것은 다름아닌 남조선 정부와 기업, 대학, 그리고 학회 등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멀리 있는 거대한 적이라면 저들 - 남조선 정부와 기업들은 가까이 있는 적들인 셈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윈도우즈를 써야할 일이 있던 시절엔 음료수나 하나 들고 다른 연구실에 찾아가서 필요한 일만 후딱 해치우곤 했지만, 애초부터 협상할 의사조차 없었던 무자비한 적들의 연합 전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숨막히게 옥죄어 왔다. 예를들어 작년 겨울 병실에서 요양 중인 -_- 나를 위해 누님이 대신 질러준 삼성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는데, 내가 몇 년 동안 공들인 리눅스 데스크탑에서는 아무리 해도 그 사진들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직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만 설치되는 삼성의 전용 USB 드라이버로만 가능한 일이었고, USB 기술이란 Universal Serial Bus - 즉 그동안 중구난방었던 컴퓨터 주변기기들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하자는 것이었다는 나의 상식은 gg되고 말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갑갑한 기억들만 해도 여럿 되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여기선 이쯤만 해야겠다.
한 달에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두 번 씩이나 그 적성 시스템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도 내 나름대론 꽤 오래... 앞서 소개한 방식으로 버텨 봤다. 하지만 지금은 결국 (데스크탑은 여전히 리눅스 only지만) 노트북을 리눅스+윈도우즈 듀얼 부팅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살아 남기 위해서 ㅠㅠ 하지만 하루에 너 댓 번 씩 적성 시스템인 윈도우즈를 이용하게 될 지라도(요즘 종종 이런 날이 있다...) 나의 종족은 영광스런 프로토스 리눅서 - 이 신념은 조금도 변치 않은 채 그대로다.
...
앞서 언급한 적들의 자중지랄 자중지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의견엔 나 또한 어느정도 동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상상해보는 최선의 시나리오들이라면,
- 남조선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전술적 충돌이 격화되어(물론, 한 줌도 안 되면서 허구헌날 귀찮게 덤벼드는 리눅서를 비롯한 비주류 종족들의 완전한 말살이라는, 그들의 전략적 목표는 변함없겠지만) 서로 소모적인 분란을 가능하면 오래오래오래~ 지속한다거나
- 오래 끌 줄 알았던 남조선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분란이 싱겁게도 금방 끝나 버리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미처 준비가 안 된 남조선 기업들이 제대로 한 번 뒤집혀 버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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